느리게 쓰는 시
하랄드 하르퉁
나는 ‘느리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느림을 표현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예컨대 천천히 오늘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이 오후는 이미 2년의 세월에 걸쳐 지나가고 있다, 천천히 종이조각들이 한 장 두 장 여기 탁상 위에 쌓이고, 그러다 나뭇잎 혹은 사랑이 멈칫거리며 타들어가는 것을 내가 천천히 깨닫게 되는 날들이 있다, 증기선 한 척이 운하들을 지나 하얗게 미끄러져 간다 프로이센의 역사를 넘어서 그리고 탁 트인 하펠 강 위에서 나의 전쟁은 아직도 가라앉으려 하지 않는다 그 많은 웃음과 음악 소리에 섞여 천천히 (그 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 아주 천천히 라고! ‘아주’와 ‘천천히’ 사이를 한 번 끊어주면 더 좋고 고통이란 내면으로 꼬여든 길고 긴 감정 또 다른 영상 하나 전철이 보인다 (베를린/슈타트반-본) 나는 본으로 가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나를 붙들고 있는 감정의 덩어리 열차는 지나가고 누르스름한 지평선 너머로 신호는 멀어진다 열차는 결코 그 곳에 도착하지 않고, 나는 그 열차를 눈으로 단단히 붙잡는다, 하늘은 노을 지고 어둠이 깃든다, 그것은 그토록 길고 천천히 흐르는 영상
나는 느리다는 말을 좋아한다, 마음의 불안이 때때로 그 언어를 전율케 한다, 마치 지금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저 비행기가 창문들을 진동케 하듯, 평화로운 프리데나우 두 줄의 시행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더 늙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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