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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에../음율속의선률

가을 저녁 - 김현승

새가 페루에서 죽다[http://blog.daum.net/zydeco]



가을 저녁

김현승


긴 돌담 밑에
땅거미 지는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로 그리는 무거운 가을 저녁.
짙은 크레파스의 가을 저녁.

기적은 서울의 가장자리에서
멀리 기러기같이 울고.
겹친 공휴일을 반기며
먼 곳 고향들을 찾아가는
오랜 풍속의 가을 저녁.
사는 것은 곧 즐거움인 가을 저녁.

눈들은 보름달을 보듯 맑아가고
말들은 꽃잎보다 무거운 열매를 다는,
홀로 포키트에 손을 넣고 걸어가도
외로움조차 속내의처럼 따뜻해 오는
가을 저녁.

술에 절반
무등다(無等茶)에 절반
취하여 달을 안고,
돌아가는 가을 저녁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리도 또 어느 곳에서,
그러나 가을은 여름보다 무겁다!
시간의 잎새들이 떨어진다.
내 어깨의 제목(題目) 위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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