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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산행/실크로드

란저우 병령사(炳靈寺)석굴

 

란주 신도시에 위치한 란석호텔

 

 

 

 향양마두(向阳码头) 준공기념비(2001년 4월)

 숙소에서 버스로 2시간 40분 이동해 이곳 향양 선착장에 도착했다.

 

 

 

향양 선착장(向阳码头)

란저우(兰州 난주) 유가협(劉家峽) 댐은 중국 황하강 상류에 있는 협곡으로 감숙성 중남부, 난주 서쪽 약 6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황하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589월부터 댐의 건설이 추진되어, 1961년에 콘크리트 중력댐이 완성되었다. 높이 148m, 길이 840m,

저수량 57의 다목적댐으로, 160kw의 발전과 450ha의 농토 관개가 가능하다. 공업도시 난주를 비롯한 감숙성의 전력수요를 충족하고,

감숙성 북부평원 및 내몽고(丙蒙古) 자치구 등지의 농토를 관개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유가협 댐에서 병령사 석굴로 가려면 모터보트를 타고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나는 이곳 향양마두(向阳码头)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20분만에 병령사 도착했다.

   

 

 

병령사마두..병령사 선착장

 

 

 

병령사 선착장에서 바라본 황하석림

 

 

 

 

 

 

 

 

 

 

 

 

만홀조천(萬笏朝天)의 황하석림

 

 

 

 

 

선착장에서 5분여 걸어오니 병령사 입구에 도착했다.

 

 

 

검표를 마치고..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석굴로 향한다.

 

 

 

 

 

 

 

 

 

 

 

 

 

 

 

10여분 걸어오니 별령사석굴을 알리는 석간판이 보인다.

 

 

 

 

 

 

 

 

 

 

 

병령사 석굴의 제6감실(龕室) 불

병령사 석굴의 유물은 당나라 시대의 유물이 대다수다.

석굴의 수는 184개이며 그 가운데 석상이 694개이며 소상은 82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현암대불(縣岩大佛)의 옆모습 

 

 

 

  란저우(兰州)에서 서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용징(永靖)현에 있는 병령사(炳靈寺)

  서기 420년 서진 시대에 창건되어 북위, 서위, 북주, , , , , ,에 걸쳐 확장되었다

 

 

 

병령사 석굴의 제7감실(龕室) 불상 

 

 

        서진(西秦)시대부터 시작된 서북 불교 미술의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으로,

             5개 북방 민족(흉노, 선비, , , )에 의해 어지럽던 516국 시대

            당시 북방 민족들이 중국인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불교를 전파하면서

            서북 지역에 수많은 석굴을 개착하였는데, 이곳도 그 중에 한 곳이다.

 

 

 

 

 '병령'이란 티베트어를 음역(音譯)한 것으로 십만불(十萬佛)의 뜻인데, 천불동, 만불동 등과 같이 많다는 의미이다.

 

 

 

병령사 석굴의 제10감실(龕室) 불상 

 

병령사 석굴은 용흥사(龍興寺)로 불리던 당나라 때 가장 활발하게 석굴이 지어졌다.

송대에 이르러서도 토번과 서하의 침입에 대처하는 의미로 불심을 모으기 위해서 많은 참배자가 찾았다.

이에 따라 불상에 대한 공양이나 동굴의 수리가 계속 이어졌고 원나라 이후에는 라마불교가 유행해서 라마불교 양식의 석각이 조각되었다.

 

 

 

 

  병령사 석굴은 용흥사(龍興寺)로 불리던 당나라 때 가장 활발하게 석굴이 지어졌다.

  송대에 이르러서도 토번과 서하의 침입에 대처하는 의미로 불심을 모으기 위해서 많은 참배자가 찾았다.

  이에 따라 불상에 대한 공양이나 동굴의 수리가 계속 이어졌고 원나라 이후에는 라마불교가 유행해서 라마불교 양식의 석각이 조각되었다.

 

 

 

 

 

 

 

란저우 빙링스(炳靈寺)석굴

병령사가 위치한 난주 용정현은 서쪽으로 하서지역, 동쪽으로는 시안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위치로 그 옛날 스님과 상인들은 반드시 이곳을 통과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으로 여겨졌다. 병령사 석굴은 난주의 서남쪽 120킬로, 황하 상류의 홍사암 북안에 위치하고 있다. 병령사 석굴은 황하가 굽어보는 소적석산의 기암절벽 높은 산봉우리 아래에 형성되어 있는 석굴사원이다. 당대에는 용흥사(龍興寺)로 불렸고, 북송대에 이르러 영암사(靈巖寺)라 불렸다. 병령(炳靈) 이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천불동(千佛洞) 또는 만불동(萬佛洞)이라는 뜻이며, 십만(十萬)의 미륵불이 머무는 도량이라는 뜻도 있다. 420516국시대의 서진 때 세워졌고, 그 후 북위에서 수, , , , , 청나라에 걸쳐 1500연간에 만들어진 석굴과 감실의 수는 모두 184, 크고 작은 각각의 석불이나 소상은 776좌에 이른다고 한다. 이중 특굴로 지정된 169굴이 가장 유명하다.

 

 

 

 

1500년간 194개의 석굴과 776구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석굴은 크게 상사上寺, 중사中寺, 하사下寺로 나뉘는데 전체 194개의 석굴 및 감실에서 184굴이 하사에 집중되어 있다.

하사에는 총 694구의 석불상과 82구의 소불상이 남아 있으며 벽화도 상당수 잔존하고 있는데 그 면적이 912에 달한다.

 

 

 

서진(西秦)때의 대표적인 석굴은 제1()169굴이다.

1감에는 대형 마애삼존불이 새겨져 있는데 명나라 때 마애불 위를 흙으로 덧붙여 소상(塑像)처럼 나타낸 것이 1964년 유가협댐 건설 때

흙이 제거되면서 서진 본래의 마애불이 드러났다.

 

 

 

 

 

 현암대불(縣岩大佛)의 옆모습 

 

 

 

병령사 석굴의 제70호 굴  11면 관세음보살상..명대에 만들어진 걸작인 불상

 

 

 

 

 

 

 

 

 

병령사 석굴의 제134감실(龕室) 불상 

 

 

 

 

 

 

 

  현암대불(縣岩大佛 : 171호불상)  높이 27m, 당대

   원래는 미륵대불상 앞에 다층 누각이 있었는데 전화(戰禍)로 파괴되면서 불상도 부서졌지만 복원하였다 한다.

 

 

 

 

 

 

 

불(縣岩大佛) 좌측으로 제 169굴이 보인다.

 

 

 

 

 

 

 

 

 

 

 

        신비의 돌

            안으면 재앙을 없애주다고 알려져 반질반질하다.

 

 

 

  병령사 석굴 와불상

  유가협 댐을 건설하면서 제 146호굴에 있는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1967년에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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