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동복 연둔리 숲정이에 왔다. 연둔리 숲정이란? 순 우리말로 농촌마을의 배후에 숲이 우거진 곳을 말한다.
둔동교 난간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이 영롱하다.
연둔리 숲정이가 있는 곳은 둔동 마을이다.
옛날 군대나 역을 운영하기 위해 군인 등이 경작하던 논인 둔전이 있다고 해서 불리는 마을 이름이다.
안개낀 동복천에 투영된 나무들이 만들어 낸 수묵화.
연둔리 숲정이에는 하천변 제방 유실을 막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9군데에 방천을 축조했다.
연둔리 숲정이는 지역민 등 우리 조상들의 각고한 노력의 결과물로 이루어진 아믈다운 숲이다.
숲정이(전라남도 기념물 제 237호)는 동복천변 둔동마을 앞에 700m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있다.
연둔교를 걸너와 반대편 산책길 걷는다.
강아지풀에도 안개가 내려 이슬이 맺혔다.
숲정이 산책은 출발지점인 둔동교에서 마무리 하고 운주사로 발길을 옮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내소를 지나 오니 운주사 일주문이 보인다.
운주사 위치 :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도암면 대초리 21 (지번)전화 061-374-0660 , 주차 가능
운주사 일주문을 지나면 천불천탑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운주사 석탑은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새긴 장식이 일반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독특한 문양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 석탑과 달리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고 암반위에 여러 단의 방형 좌대를 조각하고 직접 세웠다.
탑신부 안에 꽃이 새겨진 마름모꼴의 기하학적 문양이 가득 조각되어 있다.
9층석탑 우측에는 응회암에 기대어 서있는 불상군과 그 위 능선에 세월을 담은 '거지석탑'이 있다.
석불은 돌기둥 모양의 선체이며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손과 팔의 모습이 독특하다.
능선에는 옥개석이 모두 깨져 있어 '거지석탑',' 동냥치탑'으로 불리는 5층석탑이 있으며 이를 '무소유탑'이라고도 한다.
상자 모양으로 다듬은 기단위에 원형의 1단 괴임을 만들었고 그 위에는 신라 석탑 양식의 탑신부가 자리잡고 있다.
각층 두툼한 지붕돌은 정교하며 추녀와 처마가 직선형으로 표현되었다. 신라의 전형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
불상 뒤에 광배가 있는 석불이라 하여 광배석불좌상으로 불리우며 광배와 석불을 하나의 돌로 파서 조각한 것으로 광배에는 화염문(불꽃같은 형상을 이룬 모양)을 새겼으며 가부좌한 두다리를 구분하여 조각 되었다.
주변의 다른 석탑이 큰 방형 지대석을 설치하여 기단을 대신한 것과 달리 규모가 작고 낮은 지대석 1단 괴임을 마련하고
탑을 세웠다. 백제 석탑의 기법을 보여주며 옥개석의 폭과 탑신의 높이의 체감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탑이다.
감실은 장방형으로 좌우벽면은 판석으로 막았으나 앞뒷면에는 출입구를 내어 불상이 밖에서 보이도록 했다.
지붕은 팔작형태로 정상에는 용마루가 수평으로 표현되었고 그 양쪽으로 치미를 장식했다. 감실 안에는 2구의 석불이 가운데 세워진 1매의 판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하나의 돌로 된 거북이 모양의 지대석 위에 두툼한 훤형 단을 만들고 탑을 세웠다.
원형의 갑석에는 연꽃을 선으로 표현 하였으며 원형의 탑신과 옥개석은 모두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7층석탑, 석조불감, 다층원형석탑, 무명탑을 한장에 담아본다.
운주사에는 전통찻집이 있어 여유롭게 차한잔 하고 쉬엄 쉬엄 산책을 즐겨도 좋을 듯 하다.
대웅전 앞 다층석탑은 4층의 옥개석만 남아 있으며 옥개석이 층을 이루는 모전석탑과 유사한 형태이다.
운주사는 보통의 절집과 달리 소박하며 대웅전이 위압적이지 않고 불상도 근엄하지 않습니다. 가람의 형식도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담장이 따로 없고 천왕문이나 불이문도 없어도 소소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사찰이다.
법성요 담장에는 먹음직스런 감이 주렁주렁이다.
대웅전 안뜰에도 가을이 익어간다.
마애여래좌상은 암벽의 형상을 그대로 살려 얕게 부조되어 있다. 풍화작용으로 인해 전체 윤곽은 잘 들어 나지 않지만 우뚝한 코와 기다란 귀, 일자의 눈은 아직도 선명하게 잘 보인다.
이제 운주사에서 제일 유명한 와불을 보러 계단을 오른다.
거북바위라는 커다란 바위 위에 5층석탑과 7층석탑 2개의 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7층석탑 탑신에 세긴 X 문양은 무엇을 의미할까?
산정상에 와불 2구가 나란이 있어 '부부와불'이라고도 불린다.
운주사에서 가장 유명한 와형 석조 여래불은 너비 10m, 길이 12m 크기의 큰 대불이다. 이 와불(臥佛)이 일어나면 미륵이 도래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있다.
2010년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추노'에서 송태하(오지호 분)와 김혜원(이다혜 분)이 소현세자의 아들 석견(원손)을 안고 훈련원 무관이었던 부하들을 초조하게 기다리린 후 재회하는 장면이 이곳에서 좔영되어 더욱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추노 지금 다시봐도 넘 재미있다.
와불을 보고 산을 내려와 일주문으로 가는 오른쪽 공터 석불이 나란 세워져 있다.
운주문화축제로 1997년부터 한구씩 제작된 석불들이라고 한다...다음 여행지는 세량지다.
습지원 쉼터 정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세량지로 향한다.
5분여 걸어 오르니 세량지 제방이 눈에 들어 온다.
CNN이 2012년에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곳’에 선정할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이른 아침 봄에 와야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호수에 비친 벚꽃이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점심먹고 초가을에 오니 별 감흥이 없네.
화순 8경 중에 제8경이며 둑을 의미하는 세량제라고도 불린다. 세량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69년 준공되었다.
주소 : 전남 화순군 이서면 적벽로 626-2(월산리 산 25-2)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매표소다.
화순적벽(보산·장항적벽)은 상수원 보호구역 내에 위치하여 도보 및 개인 차량을 통해 출입할 수 없으며, 적벽투어·적벽셔틀을 통해서만 출입 가능하다. 화순적벽 중 물염·창랑적벽은 개인 차량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적벽투어는 인터넷 예약, 적벽셔틀은 현장매표로만 이용가능합니다. 화순적벽버스투어는 (재)화순군문화관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민의 식수원인 동복댐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 된 후 약 30년 만에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이 상생의 공동발전을 위하여 화순적벽을 부분 개방하기로 상호 협의하여 2014년 10월 23일부터 개방하게 되었다.
화순 적벽투어에 대하여 더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된 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tour.hwasun.go.kr/www/cmd.do?opencode=pg_main
화순적벽입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 탑승 후 10여분 지나 버스가 정차한다.
적벽 전망대에 오르니 풍광이 압권이다. 어제 올랐던 옹성산과 장항적벽, 거북섬, 동복호, 보산적벽이 만들어 낸 한장의 산수화다.
보산적벽 위로 망향정 및 망향비가 조망된다.
버스에서 내려 통천문을 통과해 장항적벽 방향으로 갑니다.
망미정으로 가는 길
망미정이 시야에 들어 온다.
망미정(望美亭)은 전남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에 있는 정자로서, 적벽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다. 정자의 주인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丁之寯, 1592∼1663)으로 당시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개한 나머지 고향에 내려와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하며 생을 마감한 곳이 바로 망미정이다.
정지준은 망미정에서 학문에 전념하다가 계묘년(1663) 12월 숨을 거뒀다. 정자는 1646년(인조 24) 적벽 강가에 지어져 전해 내려오다, 동복 댐이 들어서면서 1983년 현 위치로 옮겨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편액을 자세히 보니 글씨의 주인이 바로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 눈길을 끈다.
장항적벽(노루모적벽)에 도착했다.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 되고, 그 풍광이 신선이 살만하다 하여 ‘동천’에 비유되는 곳 장항적벽이다.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 절경으로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을 꼽는다.
수많은 시인들이 영감을 얻어갈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다. 산의 형세가 노루(獐)의 목을 닮았다고 '노루목적벽'으로 불린다.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아무때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반면,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볼수 있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학리 일대 7km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을 화순적벽이라 부른다.
화순적벽에는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이 있는데 통칭해서 화순적벽이라 부른다.
적벽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온 신재 최선두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보고 중국 후베이성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이름 붙였다.
이후 호남을 대표하는 하서 김인후, 담양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금산에서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등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적벽을 찾았다.
석천 임억령은 화순적벽을 유람하고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했고, 하서 김인후가 적벽시를 을퍼 명승지가 되었다고 한다. 1847년 12월에 동복현감으로 부임한 이인승이 장항적벽 석면에 '赤壁洞天' 4글자를 새겼다.
조선 후기 들어 실학자 홍대용과 정약용도 아버지를 따라 유람을 나섰고,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도 화순을 세 번이나 찾을 정도로 각별했다.
동복댐이 건설되기 전만 하더라도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1971년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5년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출입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댐이 들어서면서 적벽의 일부를 비롯해 인근 15개 마을도 수몰됐다. 2014년 10월 적벽이 개방되어 정확히 30년 만에 감격스러운 상봉을 하게 된 셈이다. 30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으니 적벽과 함께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남은 것은 당연하다.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산 109-1번지에 소재한 망향정(望鄕亭)은 1970년대 동복댐 조성사업으로 발생한
15개 마을 5000여명의 실향민들의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광주광역시에서 신축 1999년 준공되었다.
1983년 동복댐의 완성으로 적벽의 절반은 물에 잠기게 되고 그 주위에 살던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게 된다. 적벽의 맞은편에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설움이 담긴 정자가 망향정이다. 망향정은 장두석 선생님이 주도하에 전라도의 윤창병 목수가 지었다.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 되고, 그 풍광이 신선이 살만하다 하여 ‘동천’에 비유되는 곳.. 바로 화순적벽이다.
세량지에서 안개가 피어 오르는 멋진 모습을 못본 아쉬움을 뒤로 하고 화순에서의 1박 2일의 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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