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민족 집시-세번째 이야기
이주와 유랑의 역사는 그들의 문화형성에 있어 기본적인 전제에 해당하게 된다. 그들은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지역으로 유랑함에 따라서 같은 집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나 문화, 정서적인 측면에 있어서 서로 멀어져 갔다. 특히 유랑중의 집시들은 그들이 잠시 정착한 언어그룹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방언이 태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유랑하면서 그들은 스스로가 가진 정체성이 희미해져갔고, 그들을 결속할 어떠한 공통분모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살 수 있는 영토가 없었고, 그들을 보호해줄 군대나 정부조차 없었고, 돌아갈 고향도 없었다.
이런 점은 집시들로 하여금 그 고유한 문화적인 특색, 즉 모든 것을 수용하고 나름대로 해석하는 문화적인 전통을 갖게 하였다. 또 이동중 타민족과의 혈연적인 혼합으로 그들 문화세계나 인식세계, 심지어는 그들의 외모조차 원래가지고 있던 것들과는 달라지게 되었다.또한 이런 유랑생활은 그들에게 통일된 언어나 통일된 사회구조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하여, 그들의 인종적인 억압이나, 편견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런 파편적인 생활로 인한 궁핍은 차츰 그들을 집시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하도록 조장했던 것이다.
이런 유랑생활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한 기술을 익혀야 했고, 그것은 잠깐 머무르면서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어야 했다. 1522-1523년의 불가리아의 세금장부를 보면, 그들의 직업은 대장장이, 악사, 신발수선공 등등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곰곰히 살펴보면, 이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도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음을 알 수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농기구를 고치거나, 농노들에게 음악과 춤을 보여줘 유희를 제공하거나, 신발이나 생필품을 수선해 준 것이다. (물론 아주 드물지만, 수사학자나 터키의
기병이나 근위병이 된 집시도 있었다.)
물론 위와 같은 직업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집시들이 정착했는가? 아니면 아직 유랑중인가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유랑에서 국경을 넘어서하는 경우가 있고, 국경내에서만 유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룹도 다양하고, 유랑방법도 다양하고, 그래서 언어나 문화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한... 이런 면들이 집시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Russian Gypsy Soul : 러시아 집시 음악의 최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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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인간이 지니는 희노애락을 두 장의 CD에 묶어낸 월드 뮤직 최고의 명반! 장엄한 느낌을 주는 노매딕 집시 음악의 `시베리안 집시`, 춤과 피들 위주의 경쾌함을 보여주는 도시형 집시 음악의 `젤렘`과 `일로`, 집시 로망스의 `니콜라이 에르덴코`, `발렌티나 프로노마레바`, `모세 오글루`, 그리고 러시아 남부 집시의 음악을 보여주는 `로이코` 등 러시아 집시 음악의 네 갈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로이코를 비롯한 최고의 러시아 집시 밴드들의 하이라이트.[2CD]
러시아의 집시음악
1500년대 초반 집시 무리의 일부가 남부 러시아에 이르렀고 일부는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흘러 들었다. 1721년에는 시베리아의 수도 토블스크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중국으로 이동하려 하자 총독이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집시들의 이동은 러시아에서 멈추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집시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와는 달리 박해를 받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집시들은 무엇보다도 성악 쪽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특히 18세기 후반 예카체리나 여제 통치기간에는 인기 있는 집시 가수들이 많았다. 오를로프 남작은 몰다비아와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집시 음악인들이 자신의 집시 농노들을 모아 집시 합창단을 조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1807년 그는 그들을 해방시켜 러시아 최초의 직업적인 합창단을 조직하도록 했다. 그들은 러시아 민요를 집시의 감성을 가지고 노래해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19세기가 흘러가면서 집시의 합창음악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대신 로망스와 도시셍활을 담은 노래들이 모스코바 외곽의 '아르(yar)와 같은 레스토랑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집시들은 로망스와 도시적인 노래를 통해서 집시 생활의 낭만적인 모습들은 널리 전파한 반면, 슬픈 노래를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춤을 즐기며 술을 마실때는 만사 태평해지는 러시아인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그들의 노래 속에 창조해냈다. 흔희 '집시 로망스로 알려진 러시아 집시 음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현재 가장 알려진 러시아 집시 그룹은 로이코(Loyko)로 클래식 교육을 받은 두 명의 집시 바이올린 연주자와 아일랜드 출신의 기타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러시아 집시 전통의 필수 요소들, 즉 고양된 감정과 충동, 열정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기교를 유지해 가고 있다. 러시아 집시 음악은 전형적인 유랑집시의 음악과 도시의 집시들이 보여주는 창의적인 스타일의 음악,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의 합창으로부터 유래한 러시아의 현악밴드 중심의 라우타리 음악으로 나뉘고 있다. 특히 집시들은 악기 하나에 한 명에서 두 명의 보컬로 이루어지는 연주형식을 갖는 러시아 로망스의 중요한 가수들로서 활약했다.
로이코(loyko)
1990년에 결성된 3인조 그룹 로이코는 전설적인 집시 피들러(fiddler) 로이코 자바르(Loyko Zabar)의 이름에서 그룹명을 따온 러시아 최고의 집시 밴드이다. 핵심멤버인 세르게이 에르덴코(Sergei Erdenko)는 로이코 결성 이전부터 이고르 스트로젤제프(Igor Staroselzev)와 듀엣 활동을 하였으며 14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바이올린 주자인 올렉 포노마레프(Oleg Ponomarev)와 기타리스트 발딤 쿨리츠키(Vadim Kulitzkiy), 알렉세이 베즐렙킨(Alexey Bezlepkin) 그리고 보컬과 파커션을 맡았던 레온시아 에르덴코(Leonsia Erdenko)등이 로이코를 거쳐 갔으며 이렇게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의 참여로 로이코는 '음악 연구소' 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현재는 세르게이 외에 바이올린 주자인 게오르기 오스몰로프스키(Georgy Osmolovsky) 기타리스트 미카엘 사비체프(Michael Savichev)가 로이코의 일원으로 활동중인데 게오르기는 재즈밴드에서, 미카엘은 플라멩코밴드에서 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두터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최근에 발표하는 로이코의 작품들이 대부분 자작곡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 또한 멤버 개개인의 특출한 능력에서 기인한다고 할수있는데 폭풍같이 질주하는 트윈 바이올린의 속주와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내리는 듯한 기타의 스트로크가 음의 포만감을 느기게 해주고 있다. 현재 로이코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Gypsy Times for Nunja(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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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Loyko의 2001년도 앨범이다. 현재 3인조로 활동중인 러시아 최고의 집시 밴드 로이코가 여성 보컬리스트인 레온시아 에르덴코(Leonsia Erdenko)와 함께 활동하던 시기에 발표한 앨범으로 로이코의 작품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고을 거둔 음반이다. 앨범 제목에 나오는 누니아(Nunja)는 그룹 리더인 세르게이 에르덴코(Sergei Erdenko)의 딸 이름이며 인생의 허무와 슬픔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면서 러시아 집시 음악의 정수를 들려 주고 있다. 로이코의 음색을 결정짓는 바이올린의 강력한 울림과 여성 보컬의 격정적이면서도 우수에 찬 보컬이 감동을 자아내고 있는 음반으로 월드 뮤직 러프 가이드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찬사를 받고 있는 명반이다.
1번 곡은 앨범 'Road Of The Gypsies'에서 2번 곡 Gypsy Time은 앨범 'Gypsy Times for Nunja'에서 세번째 곡 Moldova는 'Russian Gypsy Soul'에서 네번째 곡 Jelem은 엘범 'Return of Gypsy Maestro' 추출했습니다. 시베리아의 삭풍도 녹여버릴 열정으로 연주하는 로이코의 음악을 듣노라면 괜시리 생각나느거 있죠!! 보드카 그것도 러시아 산으로..
새가 페루에서 죽다[http://blog.daum.net/zydeco]
1. Road Of The Gyps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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