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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간칠정맥/백두대간[完]

백두대간 23구간(백봉령 - 삽당령)



 


산행일자
2006. 12. 25, 날씨 맑음.

구간코스
백봉령 - 786봉 - 생계령 - 829봉 - 922봉 - 고뱅이재 - 908봉 - 석병산 - 두리봉 - 866봉 - 삽당령
산행거리 18.5 km 산행시간 08:25분 백봉령 출발, 15:42분 삽당령 도착, 7시간 17분 소요

교통편
전일 승용차를 삽당령에 파킹 후 삽당령 - 대관령 구간 산행을 마치고 대관령에서 택시(011-373-9622)로 횡계로 이동, 터미널에서 강릉행 버스 탑승(15분간격),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19시 정각에 임계행 버스 탑승, 19:50분 대성장(033-562-0273) 투숙 1박, 25일 임계버스터미널에서 08:05분에 동해행 버스 탑승 후 08:25분 백봉령 하차, 산행시작, 삽당령 도착 후 차를 몰고 임계->정선->평창->방림->새말->영동고속도로 거처 21:50분에 집 도착으로 산행 종료.



 

백봉령, 정성군 임계면과 동해시를 잇는 42번 국도로 간이 휴계소가 있다.




자병산, 석회석 채취로 잘려나간 백두대간




869봉을 내려서며..






생계령




829봉을 올라서며 뒤돌아 본 대간길 좌측이 869봉, 중간 786봉, 우측이 762봉




829봉을 내려서며 조망한 석병산(우측)






922봉에서 조망한 대간길 앞쪽에 931봉, 그 뒤로 석병산, 석병산 좌측이 두리봉이다.




922봉에서 뒤돌아 본 백두대간, 저멀리 두타와 청옥(사진 중앙에서 약간 우측)은 좌로 고적대와 갈미봉을 지나 이기령으로 내려서더니 이내 상월산을 넘머 원방재에서 휴식을 취하고 1022봉을 올라 백봉령으로 향하네..






백봉령을 출발한 나는 869봉, 786봉, 생계령, 829봉과 931봉을 지나 이곳 900봉에 서있네







900봉








고뱅이재






남봉(908봉)




남봉(908봉)에서 조망한 석병산




석병산 정상 바로 직전






석병산 정상 부위




이정표, 상황지미골 갈림길




석병산 정상




석병산 정상에서 조망한 암릉




석병산 정상에서 조망한 만덕봉(우측)




석병산 정상에서 조망한 두리봉, 너머로 석두봉, 화란봉, 고루포기산이 보인다.




석병산 정상에서 뒤돌아 조망한 백두대간, 몸은 피곤하지만 가슴은 뿌듯




이정표






두리봉(1,033 m)






눈길을 헤치고 삽당령으로..




헬기장






이제 거의 다 왔다.






삽당령,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와 강릉시를 잇는 35번 국도로 간이 휴계소가 있다.






옥수수로 빗은 동동주, 전병 또한 일품이네





백봉령, 그리고 동해 푸른 물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릉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서해에서 올라오는 남한강의 소금 길은 충북의 단양에서 다시 육지로 올 라와 기껏 영월쯤에 닿아 멈추었고, 정선 땅은 올곧게 강릉과 삼척에서 나는 동해의 소금을 의지하여 살았다. 백복령은 바로 그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이었다.

백복령의 정확한 이름에 대하여는 누구에게 물어도 선뜻 일러주는 이가 없다. 이즈음은 그저 어디든 한결같이 백복령(白伏嶺)이라 쓰는데 아무래도 어딘가 께름직한 느낌이다. 임계 면의 김대중 옹은 주변의 군사적인 이름과 관련하여 실마리를 푸는데 그도 시원한 맛은 없어 보인다. 문헌을 들추어보니 『택리지』에 는 백봉령(白鳳嶺)이라 했고, 『증보문헌비고』 「여지고」 편에는 백복령(百福 嶺)과 백복령(百複嶺)을 혼용하면서 일명 희복현(希福峴)이라 한다고 덧붙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만 희복현이란 이름만 보인다.

옛 글이 이미 그랬으니 백복령의 정확한 이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닌 듯 싶다. 다만 오늘날 느닷없이 등장하여 일사불란하게 쓰이는 백복령(白伏嶺)이란 이름의 출처가 자못 궁금하다. 그 이름을 자꾸 되뇌어 보면서 나는 웬일인지 불쾌한 느낌을 감출 길이 없다. 아무래도 냄새가 수상하다. 제기랄, 나는 언제쯤에나 식민지의 후예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끄럽게, 아주 부끄럽게 다만 백두대간의 혈맥이 꿈틀대는 백복령 정상에 서서 동해를 본다. 저거였을까? 뼈에 사무치는 해협을 건너와 국토의 해안에 포말로 부서져 안기는 저 동해 바다의 하얀 눈물이었을까.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다시 동해 바다가 운다.


아뿔싸! 백두대간을 끊다니

금강산과 설악산을 지난 백두대간은 오대산 아래 대관령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바투 백복령을 건너 청옥산과 두타산으로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창창한 동해를 거느리고 또 한편으로는 금쪽같은 한강 유역을 품에 안아 무릇 대간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용비봉무(龍飛鳳舞)로 남진하는 곳이다. 거기 아무데나 부지런히 올라 웅혼한 대간의 기상으로 바다를 보고 또 땅을 보라. 우리가 언제부터 이 쟁쟁한 이야기 속에 들어 있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먼 날로부터 쉬지 않고 숨가쁘게 달려와 또한 이 곳에 이르렀는지.

그런데, 아뿔싸! 백두대간이 끊어져버렸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다시 보고 또 보아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근은 석회석이었다. 국토 개발의 역군, 시멘트라는 문명의 골리앗이 바로 그 범행의 배후였다. 존속에게 참수당한 우리의 백두대간. 끔찍했다. 자병산(해발 873)에서 백복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목덜미는 여지없이 두 동강이 난 채로 만신창이가 되어 살점이 흩날리고 선혈이 낭자하다. 비명도 없이, 몸부림도 없이 저 지경을 당한 백두대간과 더불어 우리는 장차 또 어디로 가려는가. 갈 수 있겠는가?

덮어야 한다. 당장 저 잘려나간 대간의 목을 새 살로 덮고 꺼져가는 대간의 숨결을 되살려 내야 한다. 백두대간이란 그냥 불거진 산천만이 아니다. 백두대간의 온전한 하나됨은 갈라진 조국의 올곧은 화두이며 민족의 애타는 염원이다. 오로지 그 날만을 기다리다가, 오로지 그 날만을 위해 살다가 먼저 간 많은 이들 이 있었다. 자나깨나 그 열망으로 밥을 먹고 그 목마름으로 숨을 쉬는 이들이 지금도 수 없이 많다. 덮어야 한다. 백두대간은 그렇게 함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천연자원이 아니다. 그깟 조국 산천을 온통 시멘트로 뒤덮는 일쯤이야 좀 늦어도 괜찮다. 백두대간을 되살려라! 부탁이다. 아, 부탁이다.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김하돈 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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