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림지(義林池 )
제천10경 중 제1경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첫 글자인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
순주섬
안개가 피어 오르면 몽환적인 풍경을 보여준한다고 하던데..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처음 방죽을 쌓았으며,
그로부터 700여 년 뒤인 고려시대에 고을현감 박의림(朴義林)이 다시 견고하게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의림지 수변테크 산책길을 따라 걸어가 본다.
수경분수와 홍류정(紅流亭)
수변테크 중간에 굴을 만들어 그 위로 인공폭포수가 흘러 내린다.
마치 중국 귀주성 황과수폭포에 와 있는 듯 하다.
수경분수와 목조다리.
홍류정(紅流亭)에 올라 바라본 풍경.
의림지와 용두산(870.1m)능선이 만들어 낸 한폭의 그림이다.
홍류정(紅流亭)과 의림지가 만들어 낸 풍경화.
유리다리 밑으로 용추폭포수가 흘러 내려 장관을 이룬다.
경호루(鏡湖樓)
수경분수와 인공폭포.
순주섬을 뒤로 하고 탁사정으로 향한다.
의림지에서 승용차로 20여분만에 탁사정에 도착했다.
소나기를 한차례 뿌리고 나더니 새털구름을 만들어 선사한다.
초입의 나무계단.
나무계단을 3분여 걸어 올라오니 탁사정이 눈에 들어 온다.
탁사정 앞에는 지석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풍광이 뛰어 나다.
탁사정(濯斯亭)
소나무 숲과 기암절벽의 조화
원주에서 제천으로 들어오는 국도변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은 탁사정은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의 아들 임희운이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칭했다.
탁사정 앞에는 자석천이 흐르고 있어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탁사정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제천시청 홈페이지 사진 인용)
탁사정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배론성지에 왔다.
양업교를 건너와 잔디공원을 바라본다..아름다운 전원 풍경이다.
저 멀리 성모자상이 바라다 보인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성당.
성당 앞에 세워진 최양업도마신부상.
최양업(崔良業)은 조선 후기의 카톨릭 신자로 한국의 두번째 사제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세례명은 토마스이고, 본명은 최정구(崔鼎九)이다.
성당내부의 천정은 배 밑부분을 형상화해서 건축하였다.
최양업신부 조각공원.
최양업신부의 일대기와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연도별로 정리해 전시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집
순교자들의 집 원경
황사영 순교현양탑
진복문(眞福門)
황사영 토굴과 성 요셉 신학교로 들어가는 문
황사영(黃嗣永) 백서가 쓰여진 토굴
최초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
배론성지
1801년 천주교 박해(신유박해) 때 천주교인들의 은둔생활지였던 배론성지는,
첩첩산중 깊은 계곡과 산의 경치가 배 밑바닥 같다고 하여 주론 또는 배론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학교인 성요셉 신학교가 소재했던 곳이며,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황사영의 백서를 집필한 토굴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으로, 우리나라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특히 배론성지 가을날의 단풍은 천주교의 숭고한 교리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봄날 배론성지의 모습(제천시청 홈페이지 사진 인용)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잇는고개.
그 옛날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이다.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목조상
박달재의 원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였으나
조선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과 이곳의 어여쁜 낭자 금봉의 애닮은 사랑의 전설이 회자 되면서
박달재로 불리우게 되었다
박달재에서 바라본 천둥산 능선(앞쪽)과 사랑산(691m)
바달재 노래비
작사 : 반야월, 작곡 : 김교성, 노래 :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박달재 휴계소에서 틀어 노은 박달재 노래가 이곳 까지 들려 온다.
노래비 우측 뒤로 박달재 전망대가 보인다.
제24회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기념비
전망대에서 바라본 박달재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둥산(앞쪽)과 사랑산(691m)
김취려장군전적비
고려 명장 김취려(金就礪)장군대첩비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 1171~1234)장군은 박달재에서 거란대군 10만 명을 격퇴시켰다.
박달재 휴계소.
이곳 목각공원에는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사연을 형상한 조각품과 함께 박달금봉 가묘 등을 조성했다.
박달도령의 장원급제를 바라며 기도했을 금봉낭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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