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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산에오르다/국내여행산행

충주여행..활옥동굴 - 탄금대

□ 활옥동굴

충주호변에 위치한 활옥동굴은 100여년 동안 활옥, 백옥, 활석 등을 채광하던 광산이다. 한때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우리나라 산업화의 큰 자취 활옥동굴이 힐링과 체험의 동굴로 재탄생 하였다. 타 동굴보다 밝고 은은한 느낌을 주는 활옥동굴은 연중 11~15도로 언제나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또한 곳곳에서 광산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동굴 안에서 타는 투명 카약이 인기다.

 

- 주소 및 문의처

  · 주소 : 충북 충주시 목벌안길 26

  · 활옥동굴 : 043-848-0503

  · 활옥동굴 카페 : 043-854-0504

 

- 이용안내

  · 관람시간 : 하절기(4~10) 09:30 ~ 18:30(마지막입장 17) / 동절기(11~3) 09:00 ~ 18:00 (마지막입장 17)

  · 관람요금 : 대인 7,000/ 청소년(..) 6,000/ 어린이(소인) 5,000/ 보트탑승 3,000

  · 월요일 휴무(월요일 공휴일의 경우 월요일 정상운영, 화요일 대체 휴무)

 

 

 

활옥동굴을 나와 탄금대로 향한다.

 

 

 

□ 충주 탄금대(忠州 彈琴臺)

해발 108m의 대문산에 위치한 탄금대는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으나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합병하고 사민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충주지역으로 이주시켜 신라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 만덕에게 우륵을 보호케 하였으며 우륵선생은 항상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연주하였다.

 

또한 조선 선조25(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장병이 탄금대 일대에서 배수진을 친 후 북상하는 가토 기요마사, 코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분패하여 강물에 투신 순국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달천과 남한강의 합수머리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우며 특히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절경을 이룬다. 탄금대에는 현재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탄금대기,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궁도장, 대흥사 등이 있고 조각공원과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탄금대 안내도

 

 

탄금대 시설 위치도

 

 

     탄금대에서 처음 맞이한 시설은 탄금대관리사무소 맞은편에 세워진 노래비다.

     탄금대사연노래비로 이병환 작사, 백봉 작곡, 충주출신가수 백진주가 1969년에 처음 부른 후

     트로트의 여왕 주현미가 다시 부른 노래이다.

 

 

 

탄금대 충혼탑이다.

 

현존하는 전국 충혼탑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195511월 광복 이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주 지역의 군인, 경찰관을 비롯해 군무원, 군노무자 등 2,838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충혼탑이라고 한다. 충혼탑 휘호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한다.

 

 

 

충혼탑 앞에는 무궁화나무 한그루가 꽃을 피우고 서있다.

오늘은 76주년 광복절이다..나라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기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에게 묵념을 드린다.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이다.

    

     조선 선조25(1592)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신립장군과 팔천장병이 탄금대 일대에서 배수진을 친 후 북상하는

     가토 기요마사, 코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분패하여 강물에 투신 순국한 전적지이다.

 

 

 

     감자꽃 노래비

 

     일제시대인 193040년대 충주가 배출한 아동문학가 권태응 시인의 시비에 새겨진 [감자꽃] 전문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평범하고 짧은 노래지만 한국 사람은 한국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항일정신을 담고 있는

     저항 시로도 읽힌다.

 

 

 

나무계단을 올라서서 몇걸음 걸어오니 탄금대기와 탄금정이 눈에 들어온다.

 

 

 

     탄금대기(彈琴臺記)

     충주의 역사와 지리, 인물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문의 글은 육당 최남선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충현이 썼다.

 

 

 

     탄금정.

 

 

 

     열두대와 신립장군순국지기

 

 

 

     열두대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남한강과 충주시내.

 

 

 

열두대

남한강변 절벽 위에 있는 바위로 탄금정 바로 아래에 있다.

 

열두대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우륵이 만든 12현 열두줄의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해서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신립장군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군사들을 독전하면서 열기에 달아오른 활시위를 강물에 식히려고

이 대(절벽)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 하여 "열두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립장군순국지기

글은 서번 박재륜 선생이 쓰고 비문의 글씨는 죽사 박충식선생이 썼다.

 

선조25(1592) 428일 팔도도순변사 신립장군이 종사관 김여물과 더불어 조총포대의 수십만 왜군을

창검궁시 팔천군사로 맞아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김공과 함께 적진에 잠입하여 수십적을 격살한 뒤

탄금대 이곳에서 향년 47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위국순절 하시다.

 

 

 

탄금대는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탄금대 북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이 만나는 합수부에 위치해 있다.

 

오른쪽에는 충주시가 자리하고 있고 그 가운데 무인도인 듯 용섬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는 현수교인 탄금대교와 우륵대교가 뻗어 있어 시원하게 풍광을 만들어 선사한다.

 

 

 

     우륵선생과 탄금대 비석.

     난계 박연, 그리고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명인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탔다(연주했다) 해서

     유래된 탄금대, 우륵 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으나 신라에 귀화하여 왕의 배려로 국원에 살면서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법지에게는 노래를,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으며 이때 가야금 곡이 신라의 궁중악으로 되었다고 한다.

 

 

 

탄금정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아래로 보이는 대흥사

 

 

 

대흥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창건주 미상의 용흥사가 있었던 곳으로 거란족의 침략을 당하여

사찰이 소실되었던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 후 19563월 오법우 큰스님께서 대흥사를 창건하였고 196810월에 화재로 인하여 대웅전이 소실되자 1969

5월에 대웅전을 재건하여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국궁 수련장

 

 

 

탄금대 공원에는 많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편안하게 산책을 하면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힐링의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악성우륵선생추모비

     가야금의 시조 우륵선생의 발자취와 신립장군의 위국충절이 잠들어 있는 탄금대에서 호국보훈의 시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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