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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간칠정맥/백두대간[完]

백두대간 29구간(한계령 - 희운각대피소)

 


산행일자
2007. 10. 10, 날씨 맑음.


구간코스
한계령 - 서북능선삼거리 - 1474봉 - 끝청 - 중청봉 - 대청봉 - 소청봉 - 희운각대피소 - 양폭대피소 - 비선대 - 소공원
산행거리 : 18.3 km, 산행시간 : 04:30분 한계령 출발, 13:10분 소공원 도착, 8시간 40분 소요


교통편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심야우등버스 탑승(23:30), 속초도착 후 인근 찜질방(해수피아)에서 잠시 눈부치고 아침식사 후 택시로 한계령으로 이동, 산행시작, 산행종료 후 소공원에서 시내버스 탑승 후 대포항 하차, 활어회에 한잔의 소주로 피로를 풀고 속초시내로 이동, 내일 산행 준비 후 1박 

 



어둠속의 한계령







한계령에서 20분거리에 있는 이정표







해는 서서이 떠오르고







끝청에서 뒤 돌아본 설악산 서북능선, 저멀리 사진 중앙에 가리봉과 주걱봉이 보이고
우측으로 귀때기청봉, 앞쪽중 앙에 1397봉과 1474봉이 보인다.







끝청에서 바라본 중청(좌)과 대청봉







중청에서 바라본 충청대피소와 대청봉







대청봉에서 바라본 서복능선






당겨본 가리봉과 주걱봉







대청에서 바라본 점봉산







대청에서 바라본 공룡능선과 마등령, 그 넘어로 황철봉, 미시령 넘어로 상봉도 보인다.







중청대피소와 중청봉



 



중청에서 바라본 설악의 풍경, 저멀리 운무에 감싸인 향로봉도 보인다.







중청에서 바라본 백담사 방향, 가야동계곡과 수렴동계곡이 용아장성을 품고 있다.







무너미고개,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 공룡능선 갈림길이다.



















천불동계곡의 아름다운 단풍










천당폭포와 단풍



 



양폭대피소



 












오련폭포와 단풍



 









천불동계곡의 아름다운 단풍








비선대







신흥사의 불상






 

소공원 풍경





한계령 


우발라화 눈꽃 피는 남설악의 절경

눈이 내린다. 소양강 물길 삼백 리는 그저 환한 밤중이다. 이미 지나온 밝은 길도 흰 눈에 덮이고 아직 가지 못한 어둔 길도 흰 눈에 가렸다. 천지간이 그쯤 되어 하늘과 땅이 모두 분별을 잃었으니 길 위의 사람 마음 또한 생각없이 가뿐하다. 새삼 무엇을 두고 하늘이라 이르고 또 무엇을 땅이라 하겠는가. 적설이 키를 덮어 케케묵은 옛일을 잊고 나면 그뿐, 사람과 땅과 하늘이 내내 하나이던 것을. 삼 년 석 달을 못살고 죽은 어린 누이도 오늘은 한없이 착하기만 하여 달빛도 별빛도 없는 밤이 이토록 밝구나.

눈길에 눈이 부셔 길을 잃었네. 소양강 얼음 우는 소리에 귀가 먹었네. 안 보이는 눈으로 산을 넘고 안 들리는 귀로 강을 건너 겨울 설악으로 드는 길. 차라리 눈 속에 갇혀 한 천년쯤을 설인(雪人)으로 견디면 까막눈이 열릴까. 아니면 그도 저도 다 버리고 소양강 얼음장 아래 빙인(氷人)으로 한 백년쯤을 버티면 먹귀가 뚫 릴까. 멀고 아득하여 답답하여라. 본래 길떠나던 자리 이미 눈보라에 휘말려 기억에도 없으니 돌아갈 자리 또한 어디에도 없는 것을, 아, 여태 온 길을 접고 나그네는 또 길을 묻는다.


'인제' 가니 폭설이 길을 막고

마침내 길이 끊어지면 번뇌도 곧 멈추리. 눈도 이만하면 이미 혁명이다. 떠도 감아도 막무가내로 덤벼 드는 눈보라의 반란. 쌓인 눈이 벌써 발목을 덮었지만 갈증도 없이 눈뜨는 인제의 새벽을 틈타 다시 눈이 내린다. 시인 박인환의 생가를 들러보자던 간밤의 생각을 앞세우고 인제군청에 근무하는 최병헌(53, 군정개발과장) 시인을 찾아갔다. 박인환은 인제읍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나 11살 무렵까지 인제에서 살았다. 31살로 생애를 접은 시인의 생가는 소양강 물가에 새로 꾸린 택지 개발에 밀려 이미 흔적을 잃었다.

인제는 본래 오사회(烏斯回)라 부르던 맥국의 땅이었다. 고구려는 저족현(猪足懸) 이라 하고 신라가 희제현( 蹄縣)이라 부른 것은 생김이 돼지 발굽을 닮은 탓이었고, 오늘날의 인제(麟蹄)란 이름을 얻은 것은 고려 초엽이었으니 돼지보다는 기린이 영물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기린이야 어차피 풍문으로만 듣던 짐승이고 보면 '사슴이 백년 묵어 기린이 된다'는 전설에 기대어 한껏 신비감을 자아낸 이름이다. 내린천이 인제로 흘러오는 길목의 지명은 조선 태종 이래 오늘도 변함없이 기린(麒麟)이다.

기린면과 상남면은 모두 백두대간의 곁가지 방태산(해발 1436) 기슭에 걸린 마을이다. 인제에서도 오지를 들먹이면 으레 다투어 꼽히는 곳이 수두룩하고 해맑은 내린천이 순박하게 대처길을 마다 않는 태고의 서정이 머무는 곳이다. 한때 몸서리를 치던 내린천 댐에 관한 소문은 이제 다소나마 가라앉은 분위기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 후보는 댐을 만들되 보상을 두둑하게 하겠노라고 공약을 걸었다가 욕을 남박으로 먹었단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인제에선 그 후보의 표가 제일 많았다. 민생의 마음이야 어차피 물류를 따르게 마련이니 그도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내린천의 무사함은 새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이었다니 우선은 믿고 볼일이다.


소양강 상류 물 맑은 '미륵천'

인제 어름, 소양강 상류의 옛 이름은 미륵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쓰기를, "미륵천은 그 물줄기가 네 갈래로 나오니, 하나는 소동라령(所冬羅嶺)에서 나오 고, 하나는 소파령(所波嶺)에서 나오고, 하나는 서화현에서 나오고, 하나는 춘천부 기린현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소동라령은 한계령의 옛 이름이니 지금의 한계천이 그 하나요, 소파령의 물길이란 진부령과 미시령에서 흘러오는 북천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서화현의 물줄기는 북녘의 백두대간 무산(해발 1320)에서 길떠나는 서화 천(인북천)을 말함이니 소양강의 으뜸 발원이며, 기린현의 여울은 오대산에서 북쪽으로 거슬러 오르는 내린천을 일컫는 말이다. 북천과 한계천을 아우른 서화천이 내린천과 살을 섞어 미륵천을 이루는 곳이 인제의 합강리(合江里)다. 그 두물머리에는 '놀기 좋기는 합강정, 넘기 좋기는 거니 고개(홍천군 두촌면)'라는 노랫말로 등장하는 합강정(合江亭)이 아름답고 그 아래 돌미륵 한 기가 서 있다. 옛날 어떤 나무꾼의 꿈에 현몽하여 물 속에서 건져냈다 는 전설을 품은 미륵인데 행여 미륵천의 이름과 남남이 아닌 듯도 싶지만, 마을에 전해오는 구전이 옳다면 대략 300년 전쯤에 소양강 목상이 조성한 것이라 하여 미륵천과는 무관한 내력이다.

합강에 또한 전해오기를 서화천은 숫물(雄水)이요 내린천은 암물(雌水)이라 하여 암물이 흐리면 홍수가 나고 숫물이 맑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그런 물점(占)의 풍습이야 으레 그 여울에 걸린 마을끼리의 유세 다툼으로 시작되는 법이지만 종당에는 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여인 홀대의 유형으로 결론에 닿는다. 합강 조금 윗목에는 낯선 이름의 먼 이국 여인이 세웠다는 다리가 하나 걸렸으니 이름하여 '리빙스톤교'다. 한국전쟁 때에, 미국 중령 리빙스톤의 군대가 북군의 공격에 쫓겨 강을 건너다가 때마침 홍수로 불어난 강물로 말미암아 숱한 이가 다치고 죽었다. 리빙스톤 대령의 유언에 따라 그의 아내가 이 곳에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 에서 발췌, 김하돈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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