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악(中岳) - 하남성의
숭산( 嵩山) 소림사(少林寺)
숭산(嵩山)
숭산은 하남성 등봉시(登封市) 서북쪽에 우뚝 솟아있다. 동으로는 성도 정주(鄭州), 서로는 고도 낙양(洛陽)이 자리한다. 전략적 요충지여서, 평소에는 시인묵객과 사상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전란때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경합이 치열했다. 산세가 동서로 약 62km, 남북으로 약 20km를 뻗어나가 고산준령이 마치 가로 누워있는 거인 같다 해서 ‘누워있는 숭산’이라고 형용하기도 한다. 명조의 저명한 문학가였던 원홍도(袁宏道)는 숭산의 형체가 지닌 독특한 면을 마르고 맵시 있는 누운 용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숭산은 크게 동쪽의 태실산(太室山)과 서쪽의 소실산(小室山)으로 구분된다. 황하의 치수를 성공시킨 전설속의 임금 우왕(禹王)이 두 부인을 거느렸는데, 젊은 쪽이 소실산으로 첩을 소실이라 부르게 된 유래를 제공을 한 산이다. 이 태실산과 소실산에는 각각 36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72개봉우리를 모두 일컬어 숭산이라 한다. 숭산에는 사찰의 수가 72개인데 주변을 이루는 산봉우리 숫자와 신기하게 일치한다. 태실산의 주봉은 준극봉(峻極峰)으로 해발1,494m 이고, 소실산의 주봉인 연천봉의 높이는 1,512m에 달한다.
숭산은 시대에 따라 이름 또한 다양하게 불리어졌다. 요순시대에는 방산(方山), 하상시대에는 숭산, 춘추시대에는 숭고 혹은 악산(岳山)으로 불렸으며, 기원전 770년 주평왕이 서울을 낙양으로 옮기고 숭산을 중악으로 정했다. 한무제가 태실산에 제사 지내러 올랐을 때 산에서 만세!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태실산을 만세산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그리고 시경에 있는 “숭고위악, 준극위천(崇高维岳,峻极于天)”이라는 문구에 따라 숭고산을 숭산이라 고쳤다. 무측천이 숭산에서 봉선의식을 가지면서 중악을 신악(神嶽)이라 부르기도 했다. 북송시기로부터 중악 숭산으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숭산은 유∙불∙도 삼교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선종(禅宗)의 조정(祖庭)인 소림사를 비롯, 진(秦)대에 창건된 도교 사원인 중악묘, 그리고 중국유교의 4대 서원 중 하나인 숭양(嵩阳)서원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다. 그중 중국 3대 사찰중 하나로 선종(禪宗)의 발원지며 소림무술의 본산인 소림사(少林寺)가 숭산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으며, 깎아지른 암벽에 천애(天涯)의 협곡이 펼쳐져 있고 그 암벽 허리를 요대처럼 가로지르는 산길이 조성되어있어 누구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삼황채경구(三皇寨景區)가 숭산이 왜 중악인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소림문화 인류유산
숭산소림 산문
무술시범 사회자...무예가 대단한 듯 포스가 있다.
소림사(少林寺)
소림사는 `천하제일명리(名刹)`로서 496년(북위태화 20년)북위 효문제가 불타선사(佛陀禪師)를 위해 건축하였다. 역사가 유구하고 중국 불교단종의 발원지로 소림무술의 발생지기도 하다. 少林寺는 하남성 등봉현 소실산 북쪽기슭 오유봉(五乳峰) 아래에 위치하며 북위효창3년에 인도고승 달마가 와서 널리 제자를 받아 법문을 전수하여 중국 선종의 시초가 되었다.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보리달마(菩提達磨)의 면벽수행과 그의 제자인 혜가(慧可)가 팔을 잘랐다는 전설로 유명하며 절의 규모는 웅대하며 산문(山門), 천주전(天主殿), 대웅보전(大雄寶殿) 등 많은 건물이 있다. 북서쪽 높은 곳에 초조묘(初祖廟), 남서쪽에 이조묘(二祖廟), 오유봉(五乳峰) 중턱에 달마동(達磨洞)이 있는데 이 모두를 총칭하여 ‘소림사’ 라 한다.
천하제일조정...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정원
서방성인(西方聖人) 전각 앞에서..
종루
달마와 그의 제자 (혜가慧可)의 선화(禪話)가 서린 입설정(立雪亭)
설인심주(雪印心珠) : 눈 속에 마음의 구슬을 새겨 놓았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1600년전 눈 내리던 어느 날 입설정에 담긴 달마와 헤가의 선화를 듣고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쓴 친필이다.
그 아래에는 달마좌상을 중심으로 혜가, 승찬, 도신, 홍인 등 선종의 초대부터 5대 조사의 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입설정(立雪亭)의 선화(禪話)
달마동에서 9년동안 면벽수행을 하고 나온 달마에게 눈내리는 겨울에 한 장수가 찾아 오면서 선불교의 시작 입설정의 역사가 시작 된다.
장수는 수많은 싸움에서 승승장구하던 장수였지만 승승장구를 하면 할 수록 마음은 더욱더 불안하게 되었고 그런 마음에 황제에게 미움을 사게되어 소림사로 쫓겨와
달마의 이야기를 듣고 달마를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한다.
달마에게 찾아간 장수는 달마를 만나게 되고 달마는 그 장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라고 묻게 되었다. 그러자 그 장수는 제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달마는 하늘에서 붉은 눈이 오면 널 제자로 받아 들이겠다.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말을 들은 장수는 자신의 왼팔을 잘라 흰 눈에 피를 뿌려 붉은
눈을 만들어 버렸다.
그런 장수의 모습을 보면서 달마는 그 장수에게 물었다. 너의 불편한 마음이 무엇이냐 꺼내 보거라. 내가 편안하게 해 주마. 그러자 장수는 마음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을 했고 달마는 그럼 찾을 수가 없는데 뭐가 불편했다는 것이냐. 장수는 깨달음을 얻었고 달마는 너는 이미 편해진 것이다 라고 하며 장수를 제자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장수가 바로 달마 선종의 제2조 혜가이다. 소림사의 승복이 한 팔을 가리고 있는 것이 바로 혜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 팔을 잃은 혜가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이 선불교의 시작 입설정의 일화이며 이 일화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바로 이곳 선불교의 시작 ‘입설정’ 이다.
이런 연유로 소림사 승려들은 왼쪽 팔을 잃은 혜가스님을 기리기 위해 인사를 할 때 오른쪽 손으로만 한다.
보리달마(菩提達磨)
탑비
대웅보전
소림사 고승들의 안식처 묘지, 탑류가 수림처럼 많아 '탑림' 이라 부른다.
삼황잔도
삼황채의 거대한 바위는 숲은 별로 없지만 푸른 나무들이 이끼 낀 듯 사이사이에 섞여 있으며 지질은 대부분이 석영암(石英岩)으로 옅은 회색을 띠고 표면은 거칠다. 마치 세로로 주름을 잡아 놓은 듯 접혀 있다. 바위가 이런 모양이 된 것은 수 억년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 지각변동으로 지층이 갈라지며 어긋나 생긴 현상이며 단층(斷層)이라고 한다. 그 형성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직립으로 세워진 거대한 바위와 웅장한 협곡은 가히 신(神)들만이 살았을 법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들이 인류시조라고 믿는 복희, 신농, 수인 삼황(三皇)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생각한다.
숭산은 천연적인 지질박물관, 지구발전의 역사책자이다. 중국에서 제일 처음 형성된 4대 대륙(숭산, 태산, 안산, 익동)중의 하나인데 30억 년 전 중화의 땅이 깊은 바다 속에 있을 즈음 우뚝 솟아올라 중원의 대륙을 형성했다. 숭산은 여러 번의 조산운동을 거쳤기에 단층이나 암장활동 등 지각운동(地壳运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침적암、암장암、변질암등 암석은 숭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여행을 하면서 1억 년의 지각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연천조교
복희, 신농, 수인 삼황(三皇)을 모신 삼황채 선원
소림사 주차장에서 바라 본 숭산
정주역에서 고속열차편으로 장사남역으로 이동해 내일은 남악 형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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