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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산에오르다/국내여행산행

울릉도 ..독도여행 - 독도편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

울릉도, 독도를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장마전선이 언제 다시 북상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다행이 날씨가 좋아 독도땅을 밟을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2021. 7. 12. 오전 8시

후포항을 출발하는 여객선 씨플라워에 탑승한다.

 

 

 

 

잔잔한 바다를 2시간 30여분 달려와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했다.

 

 

 

 

독도행 여객선 탑승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여기 저기를 둘러 본다.

 

 

 

 

터미널 건물 오른편에 자리한 지질공원센터에 들러 울릉도·독도 지도를 구했다.

 

 

 

 

터미널에서 바라본 울릉도의 산

오른쪽 중간에 뽀족한 관모봉(722.5m)이 조망된다..아쉽지만 성인봉은 보이질 않는다.

 

 

 

 

가까이로는 두리봉(417.3m)이 조망된다.

 

 

 

 

터미널 매점에서 태극기와 노란색 스카프를 구입하고..

 

 

 

 

독도행 여객선에 오른다.

 

 

 

 

사동항에서 1시간 30여분 달려와 꿈에 그리던 독도에 도착했다.

 

독도(獨島)는 우리나라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섬으로 독섬이라고도 하며, 면적은 18만 7,554㎡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동도(東島), 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동도·서도간 거리는 151m로 좁은 수도(水道)를 이룬다. 동도는 해발고도 98.6m, 면적 73,297㎡이고, 서도는 해발고도 168.5m, 면적 88,740㎡이다.

옛날에는 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우산도(于山島)등으로도 불려왔다. 울릉도가 개척될 때 입주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돌섬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돍섬으로 변하였다가 다시 독섬으로 변하였고,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프랑스와 유럽의 나라에서는 독도를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Liancourt)', '호넷(Hornet)'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1905년에 일본은 일방적으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바꾸고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한 뒤 계속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한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2005년 3월 16일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같은해 3월 17일 일반인에게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하고 대일 신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서도..최고봉은 대한봉(168.5m)이다.

 

 

 

 

좌로부터 탕건봉, 촛대바위, 삼형제굴바위, 닭바위.

 

 

 

 

촛대바위는 일명 장군바위라고도 부르며 높이는 16.5m이다.

 

 

 

 

삼형제굴바위

서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높이 44m의 시스택(바위섬)으로 세 방향의 해식동굴이 한 점에서 만난다고 하여

삼형제굴바위라고 한다. 하부는 주상절리가 발달한 조면안산암, 상부는 응회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는 삼형제굴바위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높아 염분으로 인해 식생이 자라지 못한다.

 

 

 

 

함께 타고온 여행객들이 저마다 추억만들기에 바쁘다.

 

 

 

 

괭이 갈매기도 멋진 날개짓으로 접안 성공을 축하해 준다.

독도는 별도의 접안시설이 없기에 접안 성공률이 극히 낮다고 한다.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귀에 익은 멋진 가락이 들려 온다.

태평소로 홀로 아리랑을 신명나게 불고 있고 바로 가야금이 뒤따른다..이 순간 어찌 울컥하지 않으리오.

 

 

 

 

한동안 독도의 선률에 전율을 느끼며 새삼 우리땅임을 각인한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동도의 모습이다.

독도등대, 경비대 숙소, 헬리포트 등의 시설이 있으며 최고봉은 일출봉(98.6m)이다.

 

 

 

 

부채바위라고 하는데..물개가 고개를 쳐든 모습이다.

 

 

 

 

동도의 망양대와 부채바위

망양대에는 태극기가 계양되어 있다.

 

 

 

 

숫돌바위

상대적으로 침식에 약한 응회암류가 제거되고, 단단한 조면암질 암맥부만 남아 형성된 것으로

수평으로 발달한 주상절리가 특징적이다. 바위를 이루는 암질이 숫돌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는 12.6m이다.

 

 

 

 

숫돌바위와 부채바위를 한장에 담아본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km, 일본 오끼섬에서 157.5km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태고적부터

대한민국 영토이며 고대로부터 독도의 또 다른 명칭은 독섬, 돌섬, 삼봉도, 우산국, 가지도, 석도 등이다.

 

 

 

 

 

동도 몽돌해안가 몽돌 위로 비석이 보인다.

독도조난어민위령비(獨島遭難漁民慰靈碑).

 

 

 

 

194868일 일본에 주둔하던 미국 극동공군사령부 소속 폭격기 9대가 독도에서 폭격훈련을 했다.

 

그때 독도에서 고기를 잡고 미역을 채취하던 울릉도와 강원도의 어선들이 파괴되고, 어민 대부분이 죽었지만 당시 미 군정청은 어선 11척이 파괴되고 14명의 어민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말에 따르면 조업 중이던 어선이 30여 척이 넘었고, 사상자의 수도 150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원인 규명과 피해 배상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건이 덮어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어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지 2주기가 되는 195068일에 독도 동도의 몽돌해안에 독도조난어민위령비를 세웠다. 위령비의 비문에는 피해 어민들의 넋을 위로하는 내용과 함께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밝히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비석은 1959년 이전에 유실되어 오랫동안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2005년 경상북도에서는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위령비를 다시 만들어 원래 비석이 있던 자리에 세웠다.

 

그러다가 2015년에 원래의 비석이 바다 밑에서 발견되었고 이 원본은 보존을 위해 안용복 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도조난어민위령비 [Dokdo Island Memorial Tombstone of Shipwreck Victims]에서 발췌.

 

 

 

 

독도조난어민위령비 왼쪽으로 회색의 바위를 지나 갈색바위 오른쪽 구석에 또 하나의 비석이 있었다.

大韓民國 慶尙北道 鬱陵郡 獨島之標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지표].

 

1945년 해방이 되고 울릉도의 부속 도서인 독도는 한국 소유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은 노골적으로 독도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118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 일명 '이승만 라인'을 공포했다. '이승만 라인'은 정부가 '한일 양국의 평화 유지에 목적이 있다'라고 명분을 밝혀 평화선이라 불렸다. 독도는 이 선 안쪽에 포함돼있다. '맥아더 라인' 철폐에 대한 보완책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1954118大韓民國 慶尙北道 鬱陵郡 獨島之標 영토표석이 세워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문 본체는 1959년 사라호 태풍때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은 기단만 남아 있다.

 

 

 

 

 

이제 이사부길을 따라 걷는다.

 

 

 

 

동도 몽돌해안 이사부길에서 바라본 풍경

동도와 서도의 거리는 151m로 좁은 해협이다.

 

 

 

 

서도 북쪽 끝에 위치한 탕건봉

탕건봉은 봉우리형상이 탕건을 쓴 모습이라 붙여진 명칭이다

 

 

 

 

촛대바위와 삼형제굴바위

바위에 뚫린 3개의 굴이 머리를 맞댄 의좋은 삼형제 모습이라 하여 삼형제굴바위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구멍이 1개만 보인다..선착장에서 찍은 사진에는 2개까지 보였는데..

 

 

 

 

197711월 독도 선착장 준공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는 글과 함께 태극문양을 새겨 만든 준공비

 

 

 

 

동도로 올라가는해안 절벽 아래 에 '독도 獨島 DOKDO KOREA' 라는 표지석이 있다.

 

19531015일 한국산악회가 학술조사의 일원으로 독도까지 와서 1952년 일본인들이 세운

島根縣 隱地君 五箇村 竹島 [사마네켄 오치군 고카무라 다케시마]라고 쓴 나무 말뚝을 뽑아내고

그 대신 독도 獨島 LIANCOURT [리앙쿠르]라는 표지석을 세웠었는데 일주일 만에 일본이 이를 철거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5222일 일본 시네마현에서 이날을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하자 경상북도가 그해 815일 한국산악회가 세웠던 표지석을 복원을 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 국회도서관이 독도를 가리키는 장서 분류 이름을 독도에서 리앙쿠르로 변경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산악회의 독도표지석에 적힌 리앙쿠르가 문제가 되자 경상북도에서 이 표지석을 철거했다고 한다.

 

그 뒤 한국산악회는 201576일 국가지정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받아 그 자리에 다시 세웠다.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당시 울릉도에서 명필로 소문난 한진호 선생을 불러 수비대 아래 바위벽에 韓國領 [한국령]이라는 글씨를 쓰게 하고 이를 새겨 넣음으로써 독도가 한국령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게 되었다.

 

이 당시에 옆으로 쓴 韓國, 아래로 쓴 韓國, 한자와 한글로 韓國領 한국령이라고 3개의 글을 더 새겼으나 지금은 마모가 되어 거의 알아볼 수가 없는 것도 있다.

 

독도에 있는 독도조난어민위령비(獨島遭難漁民慰靈碑), 독도영토표석, 암벽에 새긴 한국 韓國이라는 글, 한국산악회의 獨島 DOKDO KOREA 등 얼핏 보면 그저 단순한 비석처럼 보이는 이 유적들은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이다.

 

신라 장군 이사부부터 조선 시대 안용복, 독도의용수비대, 한국산악회, 독도경비대와 등대지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다.

 

 

 

 

한진호 선생이 쓴 韓國領(한국령)..참고사진임.

 

 

 

 

30분의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승선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린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독도경비대원의 경례를 받으며 독도를 떠나온다..다시 볼날까지 독도야 잘있거라

 

 

 

 

독도를 떠나면서 여객선에서 바라본 코끼리 바위.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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