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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간칠정맥/백두대간[完]

백두대간 9구간(큰재 - 신의터재)



산행일자
2006. 7. 10, 날씨, 흐리고 약간 비.

구간코스
큰재 - 회룡재 - 개터재 - 윗왕실 - 백학산 - 개머리재 - 지기재 - 윤지미산 - 신의터재
산행거리 : 24.47 km, 산행시간 : 10:30분 큰재 출발, 17: 50분 신의터재 도착, 7시간 20분 소요


교통편
07:10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출발, 09:50 김천버스터미널에 도착, 10:10 상주행 버스 탑승, 옥산에서 하차 후 지나가는 차에 정중히 인사하고 얻어 탐, 20분 후 큰재에 도착, 10:30 산행시작, 17:50 산행종료 후 신의터재에서 화물차 얻어타고 화동으로 이동, 택시를 이용해 화령에 도착, 18:45분 서울행(남부터미널) 탑승, 22:20분 서울도착,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하차, 걸어서 집에 도착.



산행들머리, 상주시 공성면 신곡리, 바로 옆에 폐교가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회룡재

 

 


산딸기


 


청머래, 망개라고도 부름


 


개터재


 



 

윗왕실재, 상주시 공성면과 외남면을 잇는 고개로 비포장길


 

 


윗왕실재에서 바라본 효곡리 마을


 


윗왕실재에서 바라본 백학산


 


백학산 정상


 

 


대간길 옆에 가꾸어진 담배잎


 

 


개머리재, 소정재라고도 부름


 

 


대간길 옆의 과수원


 

 


좌측 멀리에 지기재가 보인다.


 

 


지기재, 상주시 모동면 소재 2차선 포장도


 

 




신의터재, 상주시 화동면 소재 2차선 포장도 옆에 소공원이 조성되어있다.





백두대간을 넘어온 경상도 여섯 고을

속리산 갈림길에서 상주 길로 30리쯤이면 충북과 경북이 도계를 이루는 적암이다. 풍수에서 십 승지의 하나로 꼽는 명당을 품었다는 구병산(876) 아래 그저 평평한 들판 위에서 엉거주춤 도계가 나뉜다. 그로부터 백두대간의 화령까지는 30리 길이다. 속리산 형제봉 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난 도계는 적암을 지나고 백화산(933)을 휘돌아 추풍령 위쪽 국수봉(684)에 이르러야 다시 백두대간과 만난다. 백두대간의 경계를 넘어온 그 경상도 땅 여섯 고을을 두고 생겨난 말이 바로 중화 지역이다.

화서, 화북, 화동, 화남의 4개 면은 본래의 화령현이요, 모동면과 모서면은 옛날의 중모현이니 중화란 바로 상주목을 따르던 중모현과 화령현을 뭉뚱그린 이름이다. 짐작컨대, 오늘날까지 중화 지역이 경상도 땅으로 뿌리를 벋은 것은 아마도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국경에서 비롯된 전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남원의 팔량치 일대가 비록 백두대간의 동쪽이지만 전라도 땅으로 굳어진 연유도 비슷한 내력이 숨었을 터이다. 낮은 산줄기로 이어지는 그 두 곳은 싸움의 결과에 따라 쉴새없이 국경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 두 곳은 백두대간이 천연의 국경 역할을 잃었기 때문에 힘이 센 어느 한 쪽이 상대의 영토 깊숙이 쳐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물론 이는 사람이 걷거나 아니면 기껏 말이나 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첨단 문명의 시대에도 종류는 좀 다르지만 비슷한 사연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싸움이 있었다. 얼마 전, 문장대 용화 온천의 개발을 둘러싸고 충북과 경북이 서로 팽팽하게 맞섰던 사건이 그것이다. 용화는 바로 화북면의 마을이니 경상도 땅이지만 백두대간을 넘어 온 탓에 그 물은 달래강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한강 수계이다. 돈벌이는 경상도가 하지만 수질 오염의 대가는 고스란히 충북의 몫이다. 결국 경북 쪽의 개발 포기로 단락을 맺은 이 사건은 지방의 경계가 백두대간을 따르지 않았던 탓에 일어난 분 쟁이었다.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김하돈 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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